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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키신저, '중국의 발전은 운명이다' (2)

무너진 ‘반공’, 그리운 ‘반공’

미중화해의 싸늘한 공기가 처음 박정희 정부에 불어 닥친 것은 1969년 12월, 광화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였다.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포터는 안기부장 김형욱을 불러내 남북화해를 권했다(이것이 미국과 약소국의 격차였다).

 

사실상 닉슨정부가 미중화해를 예고한 것이었다. 이 보고를 받은 박정희는 펄쩍 뛰며 즉각 김형욱을 이후락으로 교체하며 영구 집권 프로그램을 방어 할 대응 태세에 들어갔다.

 

이때 김형욱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그의 자서전에 썼다(내부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남북화해 기회는 이렇게 해서 날아가 버렸다.

 

박정희는 미국 정부가 끈질기게 권하는 남북화해를 발로 찬 다음, 7년의 고통스런 터널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손에 쥔 것 같았던 영구 집권체제는 배신의 술자리 ‘10.26정변’으로 연기처럼 사라 졌다.

 

이 정변을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기록했다.‘국제정치에 무지한 청와대 돌대가리 참모들이 대통령을 죽였다.’(그해는 미중수교가 선언된 해였다). 뉴욕타임스의 시각은 오로지 김재규 총격으로 도배질한 한국 언론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어서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발발했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는 ‘아버지’ 박정희의 반공을 헌신 짝처럼 버렸다. 희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집권 한 전두환은 중국에 신호를 보냈다.

 

국내 미군기지에 불시착한 중공 민항기 승객 100여 명을 고급호텔과 선물로 극진하게 환대했다 (1983.5.5). 노태우는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으 로, 소련, 중국과 수교하고, 북한과 는 평화 통일 을 기약하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공 산’ 중국은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1986) 과 서울올림픽(1988)에 참가했다.

 

​‘체로키’팀과 신군부

중요한 의문 하나! 박정희의 철통같은 ‘반공’ 기조가 어떻게 신군부의 갑작스런 ‘친공’으로 전환되었는가?

 

그 배경에 냉전체제를 화해체제로 전환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작용했던 것인가? 당시를 돌아보자. 거기에 미국정부가 만든 ‘체로키’라는 이름의 비상대책팀이 가동된다. 미 정부는 10.26정변 이후 이어지는 급박한 사태를 주시하며,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해 이 ‘체로키’팀을 가동했다.

 

그리고 37년 후, JTBC 손석희 앵커가 이 ‘체로 키’팀을 ‘앵커브리핑’에서 소개했다(2017.5.25). '미국시각 1980년 5월 22일 오후 4시 미 백악관 상황실. 광주에서 첫 집단 발포가 벌어진 직후에 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는 철저히 미국의 안보 논리에 의해서 진행 됐고, 미국은 그 직전에 있었던 신군부의 발포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시민군에 대한 사형선고' 라고 표현했습니다(한신대 이해영 교수).

 

광주 시민의 생사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 회 의에 걸린 시간은 불과 75분... 광주 시민들은 하루만 더 버티면 미국이 도우러 올 것이라고 믿었으니…비극적 결말은 이미 준비되 고 있었던 셈입니다.

 

(자막; 헤럴드 브라운 미국방장관은 ‘전두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자막; ‘공수여단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발포하도록 권한을 승인받았다.’)

 

(배경 음악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나간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인이었던 체로키 인디언들이 불러왔던 (학살로 죽은자들을 위한) 노래(장송곡)입니다.

 

코드명 "체로키"... 그들은 대한민국의 광주를 이야기하면서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자신들이 (인류 역사상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극악하게) 학살한 인디언 부족, 체로키의 이름을 코드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이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신임을 받은 신군부는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 박정희의 ‘반공’에 등을 돌렸다.‘반공’을 간판으로 하여 건국한 대한민국에서 ‘반공’을 떼어내는 일은 이렇게 감행되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지금, 윤석열 현 정부는 그들만의 셈법을 쫓아 다시 ‘반공, 멸공’을 그리워한다.

 

 

미래동아시아연구소 이사장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