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춤이 주를 이루는 전통춤 공연에서 ‘한량무’는 대표적인 남성춤이다(간혹 갓을 쓰고 남장을 한 여성 무용수도 있다). ‘한량’이란 고려시대 말~ 조선 초기, 무과에 낙방한 양반을 일컫던 말로 관직을 얻을 생각 없이 놀고 먹었지만, 풍류를 알고 의기 있고 씩씩한 사나이의 별칭이었다. 한량무는 두 가지 형태로 발전되어 왔는데, 우리가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홀춤 한량무와 한량, 승려, 기생, 별감 등이 등장하여 남녀 삼각관계를 묘사한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무용극 형식의 한량무가 있다. [무용극 형식의 한량무] 무용극 형식의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으로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南寺黨牌) 중 무동들에 의해 놀았던 것인데 그 후 조선 말까지 계속해서 연행되었으나 남사당패가 분산되면서 1910년 이후 이 춤은 어른의 무용으로 기방에서 주로 추어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교방가요의 승무(僧舞)의 내용과 구성이 한량무와 같으므로 승무의 유래설에 의한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을 소재로 삼은 춤이라는 설, 탈춤의 소무(小巫)와 노장(老長)의 대무(對舞), 포도대장(捕盜大將)과 소무의 애정장면과도
한국의 탈춤(전통가면극)은 해서지역(황해도의 별칭)의 탈춤과 경기지역의 산대놀이, 영남지역의 오광대와 야류(들놀음)로 나눌 수 있다.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봉산탈춤은 강령탈춤과 함께 해서지역의 탈춤으로‘탈춤’하면 바로 봉산탈춤을 떠올릴 정도로 국내ㆍ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예부터 해서의 각 지방에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1년에 한번씩은 탈춤놀이가 벌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봉산 구읍은 남북을 잇는 유리한 지역적 조건 때문에 나라의 각종 사신(使臣)을 영접하는 행사가 잦았고 또 지방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기에 더욱 이런 놀이가 성행하였다. 연희(演戱)시기는 5월 단옷날 밤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로 원래는 4월 초파일에 놀았다. 단오 때 외에도 원님의 생일이나 신임 원님이 부임하는 날, 사신의 영접, 탈춤대회가 있을 때도 연희되었다. 봉산탈춤은 악단과 춤이 주(主)가 되고 소리가 따르는 가무적(歌舞的) 부분과 몸짓의 묵극적(默劇的) 판토마임과 재담 및 덕담의 사설로서 연기ㆍ음악ㆍ무용의 한국적 뮤지컬이다. [봉산탈춤의 구성] 전체가 7마당(과장) 5거리로 구성되었으며, 본격적인 탈놀이에 들어가기 전 '길놀이'로 부터
진도북춤은 전통춤 공연에서 주로 맨 마지막 순서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장단이 흥겹고 춤사위가 화려하기 때문에 대미를 장식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진도북춤’ 은 전남 진도 지역에서 양손에 채를 쥐고 추는 춤이다. 필자는 (뒤쪽에 진도북춤의 유래에서 세번째 장구대용설에서도 언급 했는데) 진도가 지역의 특성상 장구를 구하기 힘든 지리적 환경과 조건을 가진 탓에 장구대신 북을 메고 장구를 치는것처럼 양손을 사용해 북을 치면서 춤을 추었을 것이라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흥미롭다. 진도북을 몸에 밀착시켜 어깨끈을 메고, 허리끈으로 조여 묶는다. 양손에 채를 쥐고 양쪽 모두 연주한다는 뜻에서 양북이라고도 하고, 채를 쌍으로 들고 춘다고 해서 쌍북이라고도 한다. 진도북춤을 진도북놀이 라고도 하고, 혼용해서 쓰이고 있는데, ‘진도북놀이’ 라고 할 때는 전남 무형문화재 제18호로서 진도북춤을 말할 때 주로 쓰이는 것 같다. (예능 보유자: 장성천, 양태옥, 박관용) 그러나, 무대에 올려 공연예술로서 추어지는(우리가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진도북춤은 박병천 선생님의 진도북춤이다. 진도의 모방고놀이에서 발전한 진도북춤은 민속놀이 형식에서 무용적인 요소들을
‘승무’는 춤꾼들이 가장 많이 추고 또 배우고 싶어 하는 춤이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춤 중 가장 품위 있는 작품으로 춤가락과 반주 음악의 다양성, 무복과 공간의 조화미로 인해 예술성까지 겸비한 춤으로 인식되어 있고, 기본 춤사위나 구성에서 한국 춤의 기본 틀과 대표적인 춤사위가 응집돼 학문적 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승무의 춤사위는 물 흐르듯이 끊김이 없이 이어지고, 그 내용은 탄생부터 해탈까지의 인생사를 담고 있다. 승무는 우리나라 전통춤의 대표격으로서 1969년 7월 4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승무의 유래] 승무라는 명칭에서 불교의 색채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유래로는 불교설 이외에 여러가지 재미있는 기원설이 있다.민속무용 유래설은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황진이 무용설로 조선왕조 때 황진이가 수도승 지족선사를 파계시킬 목적으로 세모시 장삼에 한모시 고깔을 쓰고 다홍장삼을 멘 승복차림으로 교태로운 춤을 춰 끝내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다는 설이 있고, 어느 파계승이 백팔번뇌를 잊으려고 북을 두드리며 추기 시작한 춤이 승무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과,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길 가던 도중에 8선녀가 노니는 광경을 보고 사내의 괴로운 욕정을 광
이 칼럼의 주제는 한국의 전통춤 이야기이다. 첫번째 정재 (궁중무용) 춘앵전을 시작으로, 민속무용으로 분류되는 태평무, 살풀이춤, 설장구까지 우리의 전통춤 이야기를 써오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인들이 독자인 점을 감안해서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춤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겉핥기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필자가 조금이라도 추어보거나 체험해 본 춤을 우선 순위로 써오고 있다. 부채춤은 필자가 가장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춤이다. 부채춤은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 등록되어 있는데, 무형문화재는 20세기 중반 한국사회가 급격히 서구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멸해가는 전통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생긴 개념 이다. 그런데, 무용계에서는 부채춤을 전통춤이 아닌 신무용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더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이번 칼럼에서는 제외하기로 하겠다. 부채춤의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전 국민이 한 번은 보았거나 추었던 경험이 있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해외공연에서도 가장 많이 요청되어 무대에 올려지는 춤 중 하나다. 방탄소년단(BTS)이 선보여 세
우리가 전통춤 공연에서 볼 수 있는 장구를 메고 추는 춤은‘설장구’와‘장구춤’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樂과 舞가 즉, 장구라는 악기 연주와 춤사위가 융합되어야 나올 수 있는 춤이지만, ‘설장구’는 장구 연주실력에‘장구춤’은 연주 실력 보다는 춤사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설장구’는 한국의 전통예술 중 樂歌舞가 함께 하는 종합예술적인 예술의 최고봉이라 꼽히는 ‘농악’에서의 개인 놀이로 연륜이 많고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장구잽이가 자신의 장구연주 실력과 춤사위를 최대한 발휘하여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설’은‘최고’‘으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필자는 설장구를 ‘서서 치는 장구’라는 말인가 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농악대에서 제일 잘 치는 장구잽이가 맨 앞에 서는 데 이를‘'설장구’또는‘수장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장구의 특성상 양쪽 가죽을 사용함으로써 모양뿐만 아니라 음색까지도 음양의 조회를 이룬다하여 농악기 중에서 으뜸가는 악기로 보았으며, 가락 또한 그 어느 악기의 가락보다도 다채롭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설장구는 우리 민속고유의 리듬이 자연발생적인 몸동작과 더불어 표현되어, 이것이 형
‘살풀이춤’은 한국 전통춤을 대표할 만한 민속춤이라고 할 수 있다. 흰 수건을 들고 주로 혼자 추는 독무이며 수건춤, 즉흥춤으로 불리기도 한다. 살풀이춤의 흰 수건은 춤추는 사람의 감정을 담고 있으며, 허공으로 던져진 흰 수건이 그리는 선을 통해 독특한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살풀이춤은 고도의 기량과 개성, 즉흥적인 창의성을 요구하는 춤이다. 이 춤은 수건을 허공에 뿌려 그리는 선을 통해 뛰어난 공간미를 표출하며, 슬픔을 신명의 세계로 승화해 아름다운 춤동작으로 시각화하였다. 이처럼 살풀이춤은 우리 고유의 정서를 대변하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전통춤이다. 살풀이춤은 (전라)남도 굿판에서 무당이 추던 춤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굿’판에서 반주 음악인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추던 춤이었다는 것이다. 살풀이란 죽은 이가 가진 좋지 않은 ‘살(기운)’을 풀어준다는 뜻이 있지만, 지금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살풀이춤은 원래의 춤이 아니라 후대에 예술적으로 가다듬어진 춤이다. 즉, 살을 풀어준다는 제의적인 의미보다 ‘살풀이(음악)’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 인 것이다. 관련 기록에 의하면, 1930년대 후반 한성준(韓成俊)의 ‘조선음
“소방관이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소방공무원 사칭 사기, 이제는 시민의 눈으로 막아야 할 때입니다. 최근 소방공무원을 사칭해 금전을 편취하는 사기 사례가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소방청이 KBS에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단 5개월 동안 총 62건의 사칭 사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방문 판매를 넘어 ‘공무원’이라는 신뢰를 악용한 지능적인 범죄로, 시민의 불안을 야기하고 소방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장 흔한 유형은 단독경보형 감지기나 소화기를 교체해야 한다며 강제로 판매하거나, 감지기 설치를 명목으로 현장에서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어르신이나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소방안전 점검을 가장해 물품을 강매하거나 “교체가 의무사항”이라는 허위 정보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수법도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실제 소방 점검으로 오인해 대응하지 못하고 금전적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법이 더욱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A 소방서의 사례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직원 명의의 위조 공문이 한 업체에 발송되어, 대량의 소방용품을 주문한 뒤 ‘노쇼(No-show)’를 일으
이천시립화장장 건립을 위한 부지로 호법면 단천리 산55-1번지가 최종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화장장 건립을 위해 노력해 온 이천시의 과정을 지켜보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김경희 시장님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감사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장장 건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들의 의견 조율부터 입지 선정까지 다양한 민감한 사안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지 선정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내다본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이천시민이라면 누구나 화장장의 필요성에 공감할 것이다. 장례 절차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유가족들은 고인을 애도할 여유도 없이 전국의 화장장 예약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어려워 결국 4일장,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해 왔다. 게다가 고령화, 독감 및 폐렴 같은 계절적 요인으로 인해 사망자는 증가하는데, 화장시설은 이에 맞춰 확충되지 않아 원정 화장을 가야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거주지 인근의 화장장 예약이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의 화장장이 관내 지역주민에게 예약 우선권을 부
가평군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각종 중첩규제로 인해 발전이 제한돼 왔다. 「수도권정비계획법」, 「환경정책기본법」, 「한강수계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에 따른 각종 규제가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다. 그 결과 가평군의 재정자립도는 18.3%에 불과하며, 인구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선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제 과거의 일로 마감하려 한다. 가평군은 특히 2025년을 기점으로 희망찬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가평군은 2001년 이후 24년 만에 군을 상징하는 새로운 CI(상징물)를 선포했다. 새롭게 변경된 CI는 도시명 ‘가평’과 이니셜 ‘G’를 결합해 가평이 지닌 에너지와 역동성을 표현했다. 이는 가평군의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 강화와 차별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부터 가평군은 접경지역으로 포함되면서 1가구 2주택 예외 등 각종 세제 혜택이 적용되며, 산림 규제 완화로 수도권 인구 유입도 기대된다. 오는 4
이제는 글로벌시민 사회입니다. 한 나라 한 민족으로는 존재할 수 없고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고 다양한 인류들이 함께 만든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법무부 통계상 2024년에 한국 체류 이주민 2,616,007명으로 전년 대비 6.6%가 증가하여 있는데 앞으로 증가상세만 있을 전망입니다. 반면에 한국인들도 해외이민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글로벌 시민사회에서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평등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부에서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로 3D 업종인 위험하고 힘든 사업의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용허가제 도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제도는 국내에서 한국인을 구할 수 없는 중소기업사업의 인력난을 해결하려는 제도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본국을 떠나 가족 없는 외국으로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먼저 마주쳐야합니다. 사업장에서도 미숙한 업무를 위험하고 힘들게 일을 해야 합니다.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들이 처음은 한국에서 3년 일하다 1년 10개월을 체류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실근로자 제도로 재입국하고 또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처음 도착하고 일하면서 찾아
최근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인구 조사는 가평군에 큰 희망을 주는 결과로써 주목된다. 발표에 따르면 2024년 6월말 기준, 가평군의 생활인구(등록인구+체류인구)는 106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중 체류인구는 99만8,900여명에 달했다. 특히 체류인구는 가평군 등록인구(6만2,000여 명)의 15.6배로,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곳 가운데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체류인구 증가는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체류인구는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가평지역에 머문 인구로, 이는 가평군의 경제적 활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가 된다. 통계청 조사 결과 체류인구 1인당 체류지역에서의 평균 카드 사용액은 11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가평군 체류인구 수(99만8,900여명)에 적용하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한달 1,098억 원에 달한다. 체류인구의 효과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낮게 잡아도 1달 약 300억 원의 소비창출 효과가 있다. 가평군이 올해 5~6월 개최한 ‘자라섬 봄꽃 페스타’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체류인구 1인당 소비금액은 약 3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체류인구 99만 여명이 가평군
나는 신년사에서 2024년 화두를 용섭대천(用涉大 川겸손하며 덕을 갖춘 자가 큰 강을 건넌다.) 으로 정하고, 시민의 곁에 다가가는 현장 행정을 중심으로 국내외 판로개척과 자금지원을 통해 관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 해보자) 2024년 비전을‘기업애로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수요자 중심 맞춤형 시스템 운영과 기업이 체감 할 수 있는 기업활동 여건 개선’으로, 추진 방향 을‘현장 행정, 밀착 행정, 체감 행정, 홍보 행정’으로 계획하고, 속도감 있게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추진했다. 1,236개 사업체의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해결 방안이 담긴 서한문을 발송했고, 경제 불확실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지원 시책이 담긴 책자도 발송해 주었다. (정보의 신속 전달은 필수) 중소기업의 경영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경기도와 공공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여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체 대표와 임직원의 기업활동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설명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 전문가 집단을 활용했다. 모두 인사에서 시장을 바
수원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의 날 2주년(7월 14일)을 기념해 7월 31일 팔달구 작은새어린이공원에 손바닥정원을 조성했다. 민주평통통일자문회의 수원시협의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이재준 수원시장과 북한이탈주민, 민주평통 수원시협의회 자문위원 등이 참석해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민주평통 수원시협의회 이석하 협의회장은 “작은 정원이지만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큰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라며 “지역사회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오늘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만든 손바닥정원은 ‘화합과 공존의 정원’이 될 것”이라며 “낯선 환경 속에서도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꽃피우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와 태국이 국경 지역에 위치한 프레아 비헤아 사원을 둘러싸고 수십 년째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사원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1962년 캄보디아의 소유라고 판결한 문화유산이지만, 여전히 인접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양국 간 긴장이 반복되고 있다. 프레아 비헤아 사원은 9세기경 힌두교를 믿던 크메르 제국 시기에 세워진 고대 유적지로, 현재는 캄보디아 북부의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문제는 사원으로 진입하는 통로와 주변 구릉지대가 태국과의 국경선과 겹쳐 있다는 점이다. 태국은 해당 지역이 자국 영토라며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무력 충돌이 발생한 사례도 있다. 특히 2008년 프레아 비헤아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태국 내에서는 “국제사회가 캄보디아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반발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양국 군이 해당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면서 수차례 충돌이 발생했으며, 2011년에는 양측의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피해가 보고되기도 했다. ICJ는 2013년 보충 판결을 통해 “사원 주변 지역에 대한 해석 또한 캄보디아 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덧붙였지만, 태국은 여전히 일부 지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