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는 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비자 종류에 따라 선별적으로 허용된다.

2025년 6월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100만 명을 넘어선다. 이 중 절반 이상이 E 계열 취업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산업 현장 곳곳에서 한국 경제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지만, 같은 ‘취업비자’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권리와 체류 조건은 극명하게 나뉜다.
E 계열 비자는 외국인의 직업 활동을 목적별로 구분한 체류자격으로, 교수·연구자 등 고급인력을 위한 E-1~E-7, 제조·농축산·건설 분야 인력을 위한 E-9·E-10 등으로 나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전문인력 유치와 단순노동 인력 충원을 병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제도 운영은 ‘고용은 허용하되, 권리는 제한’하는 구조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E-9는 많고, E-7은 멀다
법무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E 계열 비자 소지자는 약 56만 7천 명이며, 그중 약 47만 7천 명이 비전문취업자(E-9)다. 이들은 주로 제조업(72,000명), 농축산업(18,500명), 건설·조선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외국인력 신규 도입 규모를 13만 명으로 설정했으며, 산업별 수요에 따라 배정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E-9 체류자들은 정부의 승인 아래 사업장 변경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발적 이직은 거의 불가능하고, 해고 이후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기까지의 절차도 복잡하다. 체류 기간은 최대 9년 8개월로 제한되며, 영주권으로의 전환 경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 E-7 비자(특정활동 체류자격)는 고용 기업의 스폰서와 함께, 연봉·학력·경력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외국인만 신청할 수 있다. 2025년 기준, E-7의 직종별 연봉 기준은 2,560만 원에서 2,860만 원 이상으로 설정돼 있으며, 진입 장벽이 높다.
정부는 최근 지방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특화형 E-7-4R 비자’를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신청 자격과 참여 기업 기준이 까다로워 아직은 제한적으로 시행 중이다.
체류자이지만 시민은 아닌 노동자들
같은 노동시장 안에서 일하고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체류의 안정성과 사회적 권리는 비자 종류에 따라 다르다. E-9 비자 소지자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는 가입할 수 있지만, 직장 선택의 자유나 장기적 정착 가능성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언어 장벽, 안전교육 부족, 통역 부재로 인해 산업재해나 갈등 발생 시 구제받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 ‘일할 수는 있지만 뿌리내릴 수는 없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체류는 여전히 ‘노동력 수급’ 중심의 순환형 제도에 머물러 있다.
반면, E-7이나 E-2(회화지도) 비자 소지자는 비교적 장기 체류가 가능하다. 특히 영어권 국가 출신의 E-2 체류자들은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체류 안정성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 역시 원어민 중심의 선별적 구조로, 비원어민 영어 사용국 출신의 진입은 제도적으로 제한된다.
일은 허용하지만...
정부는 외국인에게 ‘합법 취업의 길’을 열었다고 설명하지만, 실상은 노동의 기회를 주되, 정주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하는 제도라는 평가가 많다. E-9 비자 체류자는 제도 설계상 장기 정착이나 영주 전환을 상정하지 않은 상태이며, 일부 직종은 체류 연장마저 해마다 심사 대상이 된다.
취업 비자는 외국인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시민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체류 조건이기도 하다. 외국인을 노동자이되, 시민이 될 수 없는 존재로 분류한다. 노동시장에는 들어올 수 있지만, 지역사회에는 깊이 뿌리내릴 수 없는 구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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