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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미중시대, 북한이 포기한 만큼 미국이 포기하면 된다
    아직 우리 남은 북과 공존할 역량이 없다. 남북-미중: 왜 다른가? 왜 우리 남북은 미중 양국처럼 상호 경제협력을 못하는가? 상호 투자를 보자. 미중 3조3천억 달러, 남북 0 달러. 상호 무역을 보자. 미중 6천억 달러, 남북 0 달러. 코로나 판데믹이 아니어도,‘북한과 거리두기’는 오랜 불문율이다. 한중-북미: 꽉 막힌 교차 수교 왜‘한중관계’와 ‘북미관계’는 딴판일까? 한중은 지금 수교 30주년 준비에 바쁘다. 북미는 싸늘한 적대관계 가 요지부동이다. DJ는 대통령 퇴임 직후, 북미수교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조용했다. 상호 무역; 한중 3천 억 달러(2021), 북미 0 달러. 참고로, 한미 무역은 1천7백 억 달러이다. 만일, 북미가 수교하면, 한반도는 글로벌 제조업 중심이 된다! 열강이 박수칠 일일까? 한미-중국: 친미 - 혐중의 서방 구도 중국 접근을 놓고, 한미 양국은 붕어빵이다. 미국은 반중국 광풍 속에서도, 중국과 무역-투자가 치솟는 다. 오마하의 워렌 버핏은 알리바바와 BYD로 대박이다. 아이폰의 애플도 중국제 아이폰으로 대박이다. 중국제 아이폰이 아니면, 갤럭시폰과 경쟁은 불가능하다! 테슬라는 어떤가? 월마트는? 한국도 혐중 광풍 속에서, 미국처럼 중국 대박을 꿈꾼다. 중국 수출 세계 1위가 한국이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2008년과 2022년, 한국의 반중 열풍은 세계가 인정했다. 친미-혐중은 서방의 공식이다. 그 위에서 중국시장 대박게임은 계속된다. 북미정상회담: 미국도 포기하는 날이 온다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첨 만나게 되자 미국인 브루스 커밍스는,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직설법으로 쏘아 올렸다.‘북한이 포기한 만큼 미국이 포기하면 된다!’북이 뭘 포기해? 미국이 얼마나‘선제공격’을 참고 있는데? 글쎄, 포기했는지, 포기 당했는지. 그러나 커밍스는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다. 미국 사회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한국 분단 전문가다. 나는 모르는 내 일을 어느 미국인이 알려주다니. 그러나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거 참! 그렇게, 북은 뜨거운 동아시아 시장 열기 속에서 홀로‘고립된 섬’이 되었다. 남북의 미래: 후손에게 죄짓지 말자! 이건 기억해두자.상호 투자는 전쟁을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미중처럼! 거기에 평화도 있고, 번영도 가득하다.후손에게 부끄럽지도, 죄를 지을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북과 공존할 역량이 없다. 도대체 북한이 무얼 포기했단 말인가?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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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2-04-10
  • [3분 미중경제] 미국의 중국 전략과 극우 세력이 빠진 수렁
    지금 우리는 한미동맹을 부르짖으며, 동시에 중국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모든 나라들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주판을 굴리며 실리를 찾는데 혈안이다. 그 뒤에 미국의 기묘한 중국 전략이 있다. 세상에 미국의 이중적 실리전략을 눈치 채지 못한 나라는 없다. 다만, 우물 안 국내 보수는 예외다. 그들은 낡은‘반공’과 녹슨‘반중국’의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미국이 걸어온 길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다 했으나 실패했다. 2020년 가을, 미국 대선은 사실상‘반중국’을 외치며 절규한 국민대회였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처음부터, 시장규모에서 중국의 추월을 알고 있었다 (제이크 셜리번 안보보좌관). 실질 시장규모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15~20% 추월한 상태다(2020, IMF). 이제 무역경쟁은 어렵다. 자칫 인플레를 부채질할 위험이 크다. 기술경쟁은 한참 불을 붙이는 중이다. 그러나 2030년 경, 핵심 기술분야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 기후변화 대응도 주요국들이 중국의 자문을 받고 있다. 세계제국의 낭패인가? 위기인가?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전략을 요약하면(바이든, 블링컨, 셜리번 종합) 첫째, 군사적 충돌은 어렵다. 대신 동맹을 동원하여 겹겹이 포위한다. 둘째, 체제경쟁으로 승부한다. 승부처는 기술경쟁과 중산층 육성이다. 셋째, 대립과 협력을 병행한다. 중국시장 활용은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다.요컨대, 미국은 건국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라이벌을 만난 형국이다. 왜 미중전쟁이 어려운가? 세계 최대인 중국시장에 재 뿌리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 경제가 마비된다. 트럼프의 남중국해 공격 명령도 거부당했다(미 국방장관 에스퍼, 2020.10). 미중 양국의 상호 자본투자는 이미 3조 달러를 넘었다.(Rhodium Group).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4천억 달러다. 중국은 1천5백억 달러. 중국을 폭격하면 미국의 중국 현지 투자 공장도 사라진다. 중국은 군대가 아닌 시장으로 부상한다(헨리 키신저). 왜 미국은 체제경쟁으로 전환했나? 시장규모로 중국과의 경쟁은 이미 물건너 갔다. 미국은 종합국력에서 향후에도 중국보다 크게 우위에 설 것이다(제이크 셜리번). 왜 미국은 대립과 협력의 이중 전략을 택했는가? 거대 중국시장을 활용 못하면, 다른 나라 좋은 일 시킨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중국과 협력은 중요하다(헨리 키신저). 정치외교는 백악관, 시장은 월스트리트로 나누어 분업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 전략을 모르는 나라는 없다. 국내 보수 제외. 중국의 미국전략은 어떤가? 첫째, 미국은 ‘진정한 친구도 진정한 적’도 아니다. 중국의 지상과제인 경제발전에 미국 에너지는 중요하다. 둘째, 미국의 압박에는 우회적으로 대응한다. 셋째, 시간은 중국편이다(인내하며 전진한다). 지구촌 각국은 미중 양국에 대하여 어떤 전략인가? 첫째,‘양자택일은 없다.’(현 미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 둘째, 양국 시장을 최대한, 눈치껏 활용한다. 분단국인 우리 한국의 전략은? 첫째, 한미동맹을 경제동맹으로 승화, 발전시킨다(이재명 후보) 둘째,‘남북한 평화경제’에 미중과 열강을 참여시킨다. 셋째, 많은 나라들과 함께 ‘양자택일은 없다’를 준수한다. 넷째, 양대 시장 활용을 선진강국의 길에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보수의 ‘호전적 사기성’과 ‘글로벌 무지’를 널리 알린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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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1
  • [3분 미중경제] 중국의 경제 리더십과 ‘멸공’ 타령
    중국 접근에 대해, 우리 한국과 미국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외치면서 중국시장에 올인하여 선진국에 진입했듯이, 미국도 ‘반중국’을 외치면서 중국시장을 활용하여 제국의 위용을 유지한다. 그렇게 중국 시장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눈을 뜨자. 저기 깊은 수렁이 입을 쩍 벌리고 굴러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 '중국이 발전한다고? 가짜다! 중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 공산당인데....’ 서방은 오랫동안 이런 오만한 시각에 중독되어 있었다. 상대의 오만은 기회가 된다. 중국 지도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개방을 선언한 지 40여 년, 이제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변모했다. 과거 홍군의 ‘대장정’을 방불케 한다. 그 특징은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올라섰다는 데 있다. 다른 어느 제국들과도 다른 점이다. 중국의 힘은 인내에서 나온다. 서방은 쉬지않고 ‘중국붕괴론’과 ‘중국위협론’을 들이대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들에게 중국은 말 잘 듣는 하청기업이 되어주면 그만이다. ‘본래 허술한 나라 아닌가?’ ‘중국이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된다고? 그런 일은 꿈에도 없을 것이다!’ 중국 대문을 군화발로 박차고 들어와 중국을 깨운 건 서방이다. 나폴레옹의 경고는 잊은 지 오래다. 일찍이 그들이 선망해오던 동양을 짓뭉갠 것이다. 그런데 그 대륙이 다시 일어선다. 공산당을 앞세워... 중국시장에서 대박은 나의 꿈이다! 하지만 중국은 싫다! 이런 이중 전략의 맨 앞에 선 나라가 미국이다. 대통령 바이든의 일과에 ‘중국 때리기’가 빠지면 허전할 정도다. 하지만 ‘패권 전쟁’은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경쟁’이 있을 뿐이다. 바이든조차 미중관계를 ‘충돌’이 아닌 ‘경쟁’이라고 말한다. 선을 그어놓고 하는 게임이다. 치열한 ‘경쟁’과 철지난 ‘멸공’은 보는 시각과 질적 차원에서 격이 다르다. 문제다. 무릇 경쟁에는 대립과 협력이 공존한다. 그것이 자연법칙이다. 백악관이 ‘적대적 대립’을 부르짖으며 북을 치면, 월스트리트는 ‘협력성 경쟁’에 몰두한다. 본디 시장이란 몸값을 올리며 시끌짝하게 흥정에 열을 올린다.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정부는 ‘할퀴기’에 나서고, 기업은 ‘껴안기’에 나선다. 분업과 협업이 대단하다. 미국은 영리하고 현란한 나라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이런 교활한 몸짓에 따라 짱구를 굴린다. 냉혹하고 어지러운 ‘실리게임’이 점입가경이다. 미국의 중국 활용에 불이 붙었다.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시장에 1조 2천억 달러의 자본투자를 하고 있고, 끌어들인 중국 자본도 2조 1천억 달러에 달한다. 도합 3조3천억 달러다(제1∼2화 참조). 지난 연말에도, 중국으로의 자금 유입은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2021년, 미국을 향한 중국의 수출도 신기록이다. 매스컴들과 백악관이 부르짖는 ‘대결 구도’와는 딴 판이다. 매스컴이 가짜 뉴스의 본산인가? 중국의 전략은 간단하다. 승부는 시장에서! 미국은 중국시장을 활용하지 못하면 그만큼 국력이 뒤처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처럼 중국시장을 심혈을 기울여 활용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을 대결만 일삼는 바보로 보면 찐바보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이다. 대결 카드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미국을 건설했겠는가? 건국 이래 그들의 전통적인 흐름은 '국익 최우선'이다. ‘멸공’ 같은 웃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지는 않는다. 미국에는 공산당도 있다. 미국은 국익을 어떻게 챙기는가? 미국 1위이자 세계 최대 초국적기업인 애플을 보자. 중국시장을 활용하는 세계 선두주자다. 아이폰 시리즈를 중국에서 만들고, 중국시장에서의 매출도 1위다. 전기차의 선두 테슬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중국 직접 투자는 도합 4천억 달러에 가깝다. 이런 초국적기업들의 활동을 바라보며, 금융황제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은 해피하다!’고 소리친다(거대한 무역적자의 실체가 바로 이 초국적 기업 활동 안에 있다). 최근 테슬라는 백악관이 집중 공격 중인 신장 지역에도 투자했다. 본래 신장 지역은 서방 스파이들의 공공연한 단골 출입구였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신장이 ‘일대일로’의 베이스캠프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을 보자. '멸공'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중국에서 맨 처음 한국경제를 주목한 사람은 덩샤오핑이다. 1978년 가을, 그는 브레진스키 미 안보보좌관의 주선으로 일본을 방문했다(당시, 한국은 긴급조치 9호로 군사통치의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신일본제철에 안내받은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포항제철 같은 공장을 만들고 싶다.’ ‘개혁개방과 미중수교’라는 역사적 거사를 코앞에 두고 요청한 것이다. 한중수교를 맨 먼저 준비한 사람도 덩샤오핑이다. 그는 극비리에 당 원로의 후손으로 구성된 수교 준비팀을 만들고 3년 동안 준비했다(3개월 준비한 한국 정부와 대비된다). 이제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30년, 우리의 수출 1위 국가다. 수교 당시, 연구원 신분이었던 나는 대사관의 경제업무를 지원했다. 수많은 한국 기업인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베이징으로 몰려들었다. 그 열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혐중'에 휘말려있다. 최근, 전경련은 ‘한국인 열 명 중 여덟 명이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어느 기업인은 ‘멸공’을 되풀이하고, 어느 대선 후보는 뒤따라 ‘멸치와 콩’을 사는 연기를 한다. 무지를 내뱉는 ‘표현의 자유’가 넘친다. 하지만, 중국시장에 수출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다. 벌써 8년째 1위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반면교사가 있다. 이승만 정부의 ‘멸공’이나 박정희 정부의 ‘반공’에는 영구 권력을 쫓는 악의 뿌리가 들어있다. 독재 권력이라고 글로벌 감각이 없어도 되는 건 아니다. 참혹한 ‘10.26정변’은 미중수교 9개월여 만에 터졌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지적했다. ‘청와대의 돌대가리 참모들이 참변을 초래했다.’ 글로벌 감각이 없으면 얼마나 위험한가를 ‘10.26’이 말한 것이다. 요즈음 신세계의 정용진 CEO가 ‘멸공’ 발언으로 힘겹다. 글로벌 감각의 문제다. 이마트가 중국 진출에 나설 무렵, 나는 서울시청 앞 신세계 본사에서 중국의 체제변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상하이에 있는 이마트 매장을 둘러본 적도 있다. 이마트는 한때 26개의 중국 현지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욕적인 중국 진출은 엄청난 적자 누적과 사드배치의 영향으로 20년 만에 철수로 끝을 맺었다(2017).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시장은 결코 페이브먼트가 아니다. 미국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빌 게이츠도 험난했던 중국 에피소드가 수두룩하다. 장쩌민 국가 주석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고, 전용 열차로 수개월간 중국을 순회하며 시장조사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수업료를 톡톡히 낸 다음, 비로소 ‘윈도우3.1’을 중국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그 후, 후진타오 주석과는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중국 교과서에 ‘창의적인 인재’로 오르기도 했다. 수년전에는, 무한연구소에 가서 코로나19 판데믹을 예고하기도 했다. 중국시장 접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리 기업인은 삼성전자의 고 이건희 회장이다. IMF 강제편입으로, 우리경제가 잔뜩 움츠리고 있을 때, 그는 상하이에서 사장단 회의를 열고 ‘중국시장 고급화전략’을 선언했다. 고급품이 아니면 쇼윈도우에 절대 내놓지 말라고도 했다(‘가난한 중국’에 중독된 적지않은 우리 기업들이 곤욕을 치른 것과 대비된다). 삼성전자의 대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들 이재용은 경영에 앞서 먼저 중국역사를 공부했다(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그러니까 필자의 후배다). 시안의 낸드플래시 공장도 이 회장의 작품이다. 오늘날 중국 지도부와 삼성전자는 각별한 관계다. ‘멸공’ 타령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감각이 결여된 ‘금지된 장난’이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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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2-02-15
  • [3분 미중경제] 미중 공급망 ; 애플은 왜 중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는가?
    ........... ‘중국은 생산하고 미국은 소비한다. 두 나라가 마치 ‘차이메리카(중미국)’라는 한 국가처 럼 움직인다. ................ 이것은 ‘공포의 불균형’이다.’(니얼 퍼거슨) 일찍이 공급망이 중국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공포’라고 지적한 니얼 퍼거슨은 하버드대학의 보수적인 역사학 교수다. 이런 미국의 공포에 공감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도 ‘친미-혐중’이 회오리친다. 대선에 이런 혐중 분위기에 편승하는 후보도 있다. ‘우리 국민과 젊은이들은 중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발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실리 경쟁의 시대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보자. 지금 우리는 한편으로 한미동맹을 외치고, 또 한편으로 중국시장에 올인하는 중이다. 미중 갈등 속에 외줄타기 곡예에 진땀이 흐른다. ‘중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미국에 붙어야지... 별 수 있어?’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에서 ‘혐중-친미’는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많은 매스컴이나 SNS도 북을 친다. 으레 갈라치는 진영논리도 여기서는 구분이 없다. 이름난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사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우리가 뭘 알아야지요’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베이징에 특파된 기자들은 중국 비판에 열을 올리는 홍콩의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번역하여 전하는 게 일이다. 차라리 홍콩 근무가 나을 것이다. 과거 잘못된 ‘역사적 착각’으로 겪은 수많은 재앙을 잊었는가? 오래전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와 미군정, 냉전 시기에도 그랬다. 그 때마다 의로운 몇몇 인물들이 민초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고자 걱정했다. 격변의 향방을 인식하고, 변화에 마주 서서 행동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많은 지식인들은 어떤 시대 인식을 지녔던가? 지금은 어떤가? 최근의 ‘IMF강제편입’과 ‘사드 배치’도, 그에 대한 글로벌 인식은 여전히 미흡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김재규에게 사살되었다.’ 그런 식이다. 거기에 뉴욕타임즈가 지적한 시대 배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미국시대’였다. 그리고 지금은 ‘G2시대’다. 우리의 삶은 늘 거대한 시대 변화의 굴레 안에서 움직인다. 미국을 아는 만큼 중국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미국을 좀 알기나 하는지...) 우리는 지난 40여 년 동안, 미중 양대 시장을 동시에 활용했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앞으로도 가장 집중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다. 미중 경쟁에서 한국은 언제나 그 한복판에서 ‘십자로’ 역할을 해왔다. ‘싫고 좋고’가 아니라, 시대의 핵심은 ‘실리’에 있다. 중국을 향한 우리 수출을 보자. 8년 연속 세계 1위다. 흑자도 지속중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렇게 중국시장을 파고든다. 중국에 대한 수출 중에 중간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 한국이다.그걸로 중국에서 가공하면, 그중 상당 부분이 미국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한-미-중은 그렇게 엮여져 있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틀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고위관리들이 새삼스레 ‘한중관계를 존중한다’고 되뇌기도 한다. 그 안에 ‘양자택일은 없다’는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 들어있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현실이란 말인가? 그건 중국의 미국 수출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더 큰 근거는 양국의 투자 시장 협력에 있다. 제1∼2화 참조). 2021년에도 중국의 대미 수출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연말 기준 추산; 4천7백억 달러∼5천억 달러). 미중 양국은 얼마나 초강대국인가? 그들의 GDP는 도합 세계 전체의 42%에 달한다(세계은행). 나머지 열강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고만고만하다. 양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흔들린다. 이런 ‘차이메리카’ 시장 현상을 깨는 일은 라만차의 사나이 동키호테의 ‘위대한 꿈’과 같다. 바이든의 잇단 중국 압박은 쫓기는 미국의 초조함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성과가 없다. 트럼프는 그렇게 낙선했다. 일찍이 헨리 키신저가 경고했다. ‘중국의 발전은 운명이다. 견제보다 협력이 미 국익에 부합한다.’ 미중화해를 이끈 그는 국익을 우선하는 보수주의자로 유명하다. 새해 99세다. 지금 예일대에서 노년을 보내며 중국을 들여다보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해외 방문이 가장 많은 미 고위관리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다. 한국도 두 차례 방문했다. 최근 방한 후 귀국한 그가 한 공개 연설이 있다. ‘우리는 각국에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파트너들과의 모든 대화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었다.’(21.12.5). ‘한중관계를 존중한다’고도 했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한 미국의 다음 행동이 주목된다. 결국 동맹전략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시각과는 인식의 각도가 다르다. 이 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미 세계시장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주도한다. 바이든의 공급망 복구 외침에 대해, 전문가들은 늦었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것이 미국이 직면한 ‘차이나 딜레마’다. 최근의 현상을 보자. 중국에 전력난이 일어나자, 세계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다시 미국의 인플레 압력과 물류대란을 촉발시켰다. 바이든은 물류 해결을 위해 주 방위군 투입까지 발표하기도 했다(2021.10). 양국은 이렇게 얽혀 있다. 그 여파로 우리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출렁거린다. ‘중국이 싫어요’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대기업 애플을 보자. 미국이 직면한 공급망 문제를 보는데 참고가 된다. 애플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1위 초국적 대기업이다. ‘아이폰’에 이어 최근에는 ‘애플카’ 계획으로 주목 받는다. 많은 한국 기업들도 얽혀있다. 애플은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바라보고 질주 중이다. 미국 정부는 기업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게 건국이래 나름 ‘빛나는’ 전통이다. 아편전쟁 때는 미 해군의 활약이 눈부셨다(하오옌핑, ‘중국의 상업혁명’). 대통령 오바마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애플을 위해 막무가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2013.8). 상대는 삼성전자였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일부 침해했음을 인정하고, 애플의 스마트폰 제품의 수입 금지를 결정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미국은 늘 국제 협상에서 지재권 보호를 ‘전가의 보도’처럼 주장한다. 바로 그 미국이, 특허침해 제품의 수입 금지 결정을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다. 쏟아지던 비난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면 그만이다. 이 거부권으로, 애플은 아이폰4, 아이패드2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을 계속해서 수입하게 되었다. 다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진 것은 두 달 후였다(2013.10). ITC가 삼성 스마트폰에 대한 수입 금지를 결정한 것이다. 이번에는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오바마 인기는 지금도 최고다. 최근 퓨 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 40년 역대 대통령들 중에 가장 평가가 좋은 대통령으로 뽑혔다. 취임 첫해 노벨 평화상을 탄 오바마는 임기 중 가장 장기간 전쟁을 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중국 포위(Pivot to Asia)도 오바마 작품이다. 그를 이은 대통령이 트럼프와 바이든이다. 애플이 가장 공들여 협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최근에는 중국시장에서 아이폰 판매가 1위로 올라섰다. 미국이 압박하는 화웨이는 자국시장 매출 5위로 내려앉았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중국 정부와 거액의 투자 계약을 비공개로 체결하기도 했다(2,750억 달러, 2016.5). 거기에는 중국 업체의 부품을 더 많이 사용하고, 중국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며, 중국 대학과 기업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늘날, 애플의 대표 상품인 아이폰은 중국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에서 만든다. 허난성은 리커창 현 총리가 8년 동안 성장으로 입지를 다진 지역이다. 인구 1억의 교통 요충지로, 문혁 때 재난이 가장 심각했던 지역이었다. 중난하이의 장관급 인사들이 전세기로 찾아와 허난성의 성공을 학습하기도 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전임자인 스티브 잡스와 달리, 중국시장을 매우 중시한다. 수시로 중국을 오간다. 리커창 현 총리와는 부총리 시절부터 협력을 벌여왔다. 아이폰은 정저우 공항 인근에 위치한 대만 기업 폭스콘이 위탁받아 생산한다. 여기서 일하는 중국 직원은 대략 25만 명이다. 부품을 조달하는 수많은 벤더 기업들을 합치면 70여만 명 에 달한다 (정저우 공항은 인천공항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인데, 허난성 부성장이 주도했다. 그래서인지 허난성의 각 지방에는 ‘한중산업단지’를 희망하는 지역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사드 사태 이후 하나같이 모두 숨을 죽인 상태다). CEO 팀 쿡은 ‘왜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스마트폰의 유리덮개는 미국에서 만들어서 정저우로 보낸다’고 답변한다. 애플은 미중 갈등이 거세진 최근에도 아이폰 생산을 위해 15개 중국 벤더 기업을 추가로 선정했다(미국기업은 8개사). 정저우에 위치한 한 대학의 초청으로, 나는 그곳 캠퍼스에서 2018년 봄을 지냈다. 베이징 대학 동문인 총장의 권유로 특강을 했다. 주제는 ‘미중관계의 미래’였다. 때마침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특강 내용은 미중 양국의 협력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특강 후, 많은 학생들이 내 연구실로 찾아오고, 교정에서도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아이폰 생산지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복구하겠다고 외친다. 너무 늦었다. 여기 애플을 보라. 테슬라를 보라. 그뿐인가? 현재, 미국 초국적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약 3,500억∼4,000억 달러에 달한다. 1,200억 원짜리 미국 공장 수천 개가 중국에서 가동 중인 것이다. 미국의 금융황제 앨런 그린스펀은 일찍이 미중 무역적자의 대부분이 이들 초국적 미국 기업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그는 ‘미국은 해피한 나라’라고 덧붙였다. 지금 외국인들은 보따리 뭉치를 들고 중국시장으로 들어간다. 지난 11월, 중국에는 120억 달러가 넘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왔다. 사상 최대다. 향후 5년간 1조 달러가 추가로 유입될 전망이다. 거기에는 ‘좋고 싫고‘가 아닌 ’실리‘가 살아 움직인다. 나는 중국이 싫어요!’ 아! 그래요?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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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2-02-01
  • [3분 미중경제] 미중시대; ‘종전선언’과 ‘빈껍데기 선진국’의 함정
    이글은 최근 회자되는 '종전선언' 논의에 '막무가내 반공'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일찍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한반도를 국제분쟁지역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주변 세력의 균형 조건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수시로 바뀐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도 일찍이 한반도에 대해 같은 견해를 보였다. 그들의 지적은 아직 미중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이전의 얘기다. 천 년 전부터 내내 한반도는 국제분쟁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열강의 국제 분쟁에 내부 호응처럼 중요한 필수 조건은 없다. 미중경쟁이 회오리를 더해가는 와중에 ‘종전선언’이 제안되자, 야당(국힘당)과 함께 미국 일부에서는 맞장구를 치며 경기를 일으킨다. 그들은 외친다. ‘비핵화 먼저!’ 그들은 핵 전문가들이 말하는 ‘합리적인 비핵화’ 접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지만, 정치권력에는 눈을 반짝거린다. 그들에게 ‘적대적 분단’과 ‘반공’은 언제나 중요했다. 이승만 시대와 군사 독재 시대에 반공처럼 소중한 필수품은 없다. '북풍을 일으켜달라.'는 어이없는 방식으로 쌓아올린 기득권이다. '종전선언'의 걸림돌 중에 '막무가내 반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래서 무겁다. 중국의 북핵 태도를 보자. 그들은 처음 북한 핵실험을 접하고 노발대발 뚜껑이 열렸었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이점에서는 미국도 똑 같다). 수년 전, 칭화대학의 옌쉐이퉁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북핵은 현실’이라고 요약했다. 세상 어디에도 개발한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와도 가까운 현실주의 학자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현실은, 동아시아에서 다급한 쪽은 미국이다. 중국의 최우선 지상과제는 여전히 경제발전이다. ‘친구’도 ‘적’도, 그 다음 얘기다. 중국은 '종전선언' 제안에 거의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먼저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이처럼 국제 권력정치의 복잡한 토양 속에서도, 우리 한국경제는 지금 일인당 국민소득 3만5천 달러를 통과 중이다. 거기에 무역과 투자가 있다. 핵심은 우리 우수 기업들이 미중 양대 시장을 오가며 동시에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천만다행이다(물론, 모든 주변 국가들도 동시 활용에 예외가 없다). 서방은 일찍부터 한국의 중국 프레미엄을 주목했다. 양국은 자연과 역사가 준 최상의 자연적 무역파트너 관계(Natural Trade Partnership)에 있다. 서방은 중국개방과 동시에 한국경제를 ‘장밋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곧 바로 그에 대한 대책도 착수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의 예리한 ‘장밋빛’ 전망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 속에 든 칼날에는 둔했다. 왜 그랬을까? 그 무지의 이면에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이 어른거린다. 거기에 박정희 군사정부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만든 ‘반공 근대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 달콤하고도 비극적이었던 성공에 대한 향수는 지금도 흘러내린다. 그 잔혹한 ‘반공’조차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던 것이다. 그 ‘반공 근대화’가 막을 내린 계기는 10.26정변의 총소리였다. 이어서 튀어나온 신군부가 ‘북방정책’을 걸고 내달렸다. '형님의 반공’과는 딴판이었다. 여기서 수수께끼! 한국 신군부의 등장과 미국 ‘체로키 회의’의 함수다. 1980년 5월, ‘광주학살’ 직후, 백악관에서 75분간 긴급대책회의가 짤막하게 열렸다. ‘체로키’라는 이름으로...(용맹했던 ‘체로키’족은 인디언 학살의 대명사다). 회의의 결론은 신군부 지지였다. 미국이 왜 그랬을까?... 힘을 얻은 신군부는 '반공'을 '북방정책'으로 바꿔들고 소련과 중국, 북한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처참한 ‘막무가내 반공’은 '체로키' 회의로 일단 정리되었다. 거기에 신군부가 있다.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의 토로처럼, 그 시대는 우리 모두 어떻게 살았는지 정신이 없었다. 이제 우리 모두 그 시간들을 꼼꼼히 기억속에서 살려내 재정리해야 한다. 언제까지 열강의 이해에 매달려 국제분쟁지역의 짐을 지고 갈 것인가? 우리도 제정신으로 살아보자. 수수께끼 비극으로 얼룩진 ‘빈껍데기 선진국’은 우리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야 미국도 ‘종전선언’에 좀 진지해질 것이다. 다음은 ‘공급망’을 들여다 볼 것이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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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2-01-15
  • [3분 미중경제] 미중화해, 왜 한국의 ‘반공’은 저지당했는가?
    .......... 무기가 잘 팔려야 돈을 벌어 교회에 헌금도 할 수 있고, 그래야 교회도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이 현실이다(버나드 쇼)........... 버나드 쇼의 작품 ‘바아버라 소령’은 구세군의 열혈 신자인 딸과 군수산업가 아버지의 얘기다. 하지만, 무기가 팔리려면 전쟁이 필요하다. 쇼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는데 일생을 바친 작가이자 사상가였다. 영국 노동당 창설에도 기여했다. 서구 열강은 두 차례 대전을 겪고 나서야 ‘전쟁을 막는 기초는 상호 투자’라는 교훈을 얻었다(제5화). 미중화해는 무엇인가?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중국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중국의 오늘은 어떤가? 지난 2020년, 해외투자 유치 분야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제국 미국을 눌렀다(월스트리트저널). 여기에 미중 투자는 3조 달러를 넘는다. 역사는 계속 새로워질 것이다. 경제발전과 평화, 두 마리 토끼가 바로 이 상호 투자에 들어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은 부록이다. 중국은 어떻게 이처럼 투자 왕국이 되었을까? 미중화해에 즈음하여, 중국은 서방 열강이 상호 투자로 자본주의 업그레이드에 성공하는 것을 목격했다. 열강 상호간에 반복되는 전쟁을 막고, 서로 이익을 추구하며 평화와 번영의 활로를 찾아낸 것을 확인한 것이다(제5화 참조). 중국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투자와 시장경제에 팔을 걷게 된 연유다. 그 출발점은 개혁개방과 미중수교이었다(1979). 서방의 상호 투자에 비해 30년 정도 늦은 것이다. 냉전 때문이었다. 냉전 시기에, 서방은 상호 투자로 질주했으나, 중국은 미국과 서방에 봉쇄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을 반공 분단 국가로 만들었다. 냉전이 해체되면 반공도 해체될 운명이었다(최근의 종전선언 동향도 같은 맥락이다). 왜 미국은 ‘냉전 선언’을 했을까?(‘냉전 해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2차 대전 후, 갑자기 ‘나홀로 제국’으로 올라선 미국은 두 개의 과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과도한 미국의 군수산업과 무기 재고를 재정비하는 일, 또 하나는 헐벗게 된 서유럽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 열풍(Socialist Fever)을 막는 일이었다. 여기에 필요한 경제-군사적 지원으로 미국은 마셜플랜(1947.6)과 나토 창설(1949)을 준비했다. 유럽 냉전 구도는 그대로 중국과 아시아에서도 붕어빵처럼 진행되었다(1947.3). 이 무렵, 중국에서도 토지개혁을 앞세운 공산당이 국민당을 누르고 떠오르기 시작했다(1945-49, 국공 내전). 여기서 주목되는 인물이 미국의 조지 마셜 장군이다. 그는 2차 대전의 ‘영웅들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군인이다(맥아더, 아이젠하워, 패튼 장군이 그의 휘하였다). 그는 1년여 동안 중국 현지에서 미 대통령 특사로 일하며 중국공산당과 ‘국공 연합’을 조정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귀국했다(1945.12-1947.1). 귀국 즉시 중국 철수를 건의하고, 국무장관에 임명되어 ‘마셜 플랜’을 제안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다. 미국에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모두 지낸 인물은 그 밖에 없다. 냉전과 중국철수, 마셜플랜, 그리고 한국전쟁에 조지 마셜처럼 깊이 관여한 인물은 없다. 그에게 노벨평화상은 덤이었다(1953). 냉전을 한국에 들여온 것은 미군정이다. 미군정은 일제가 강점했던 한국을 반공 ‘전초기지’로 재정비해 이승만정부에 인계했다. 4.19 혁명 정부를 쿠데타로 뒤엎고 등장한 박정희정부도 이승만정부의 반공과 친미를 계승했다. 박정희정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월남 파병을 단행했다(총 32만 명). 한미동맹은 절정기를 맞았다(1965). 그러나 그 정점에서 위기기 찾아왔다. 그 신호는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쟁과, 그에 대한 미국의 반전 여론이었다. 미국 시민들은 TV에 비친 베트남전쟁을 보고 놀랐다. 그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고 실제 현장 보도였다. ‘이게 우리 미군이란 말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아시아의 약소국 베트남에서 벌이는 미군의 야만적인 학살 장면에 전율했다(한국전쟁 때는 미국 가정에 아직 TV가 없었다). 반전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반전의 대가는 심각했다. 반전을 외치던 인사들이 잇따라 암살당했다. 비폭력 민권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던 로베트 케네디(암살당한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가 살해당했다(1968). 분개한 시민들의 반전 시위는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권과 군부는 숨을 죽였다. 한미동맹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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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2-01-03
  • [3분 미중경제] 미중, 그들은 어떻게 3조 달러‘투자 파트너’가 되었는가?
    오늘날 세계시장의 약 40%는 미중 양국의 차지다. 이에 비하면, 다른 열강들의 시장규모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그들은 군사적 긴장과 거대한 상호 투자로 현란한 실리게임을 벌인다. 살벌한 이중 게임이다. 이 게임의 역사적 배경을 따라가 보자. 거기에 제국주의 내부 전쟁인 세계대전이 있다. 우선, 프랑스부터... 시몬 드 보부아르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였다. 장 폴 사르트르와는 평생 학문적 동지이자 계약 부부였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그녀는 아침마다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출근했다. 구수한 빵 냄새가 가득한 베이커리 앞을 지날 때면 그녀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배고픔을 참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보부아르 자서전). 이것이 파리 번화가에서 시민들이 직면한 전후의 처참한 현실이었다. 전쟁의 잔혹함은 눈물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는 승전국이었으나 패전국과 다름 없었다. 독일의 침략에 이어, 미 공군의 집중 폭격이 겹쳤다. 미 공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일환으로 프랑스의 교량과 철도, 도로를 집중적으로 폭파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화려했던 유럽은 남김없이 황폐한 잿더미로 변했다. 제국주의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유럽 제국주의가 붕괴되자, 지각 변동이 뒤따랐다. 미국과 중국의 부상이었다. 3류 국가에 불과하던 미국이 세계패권을 거머쥐고, 자본주의를 앞세워 유럽 재건과 냉전을 지휘했다. 참혹했던 중국도 새로운 체제의 깃발을 올렸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1913-45) 중국이 재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열강의 약탈 연합이 비교적 잦아든 것이다. 신해혁명과 신문화운동, 그리고 내전이 불타올랐다(1911-1949). 국민당과 미국을 몰아내고 승리한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체제를 내세워 국가를 송두리째 재정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양국 모두 전쟁을 이긴 승전국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맞붙었다. 이념과 자존심을 걸었다. 중국 해안선 양 끝에 위치한 한국과 베트남에서 그들은 1950년부터 1975년까지 실컷 싸웠다. 이윽고 전쟁에 지친 양국은 화해하며 이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세계 최대의 선진국 시장과 개도국 시장이 절묘한 보완구조로 만난 것이다. 미중시대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한편, 유럽은 잿더미에서 다시 출발해야 했다. 필요한 것은 전쟁에 대한 반성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또 다른 전쟁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했다. 식민지를 대상으로 한 ‘상품시장 쟁탈전’의 기본 틀이 문제였다. 이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을 방법은 막연했다. 그들은 무릎을 맞대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준수할 ‘경제 규칙을 다시 쓰기’로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규칙은 곧 ‘해외투자 패턴의 일대 변화’였다. 종래 엄격하게 막아오던 ‘열강 상호 간의 직접투자와 기술이전’의 벽을 허물기로 한 것이다. 이 ‘새로운 규칙 합의’는 전쟁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상호 쟁탈’이 ‘상호 협력’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그들은 비로소 싸우지 않고 해외시장에 손을 잡고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열강의 상호 투자는 곧 전쟁을 막는 수단이었다. ‘3차 세계대전’을 막을 대안이 나온 것이다! 상대국가에 투자한 자국 기업의 공장을 폭격하는 바보 군대는 없다(한반도 남북한도 이 상호 투자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차단당해왔다. 적대적 분단과 함께 ; 이점은 다음에 별도로 얘기하자). 실제, 전후 선진국 상호간 직접투자는 크게 증가하였고, 종래 대세였던 선후진국간 투자 규모를 훨씬 앞서 나갔다. 투자 성과도 좋았다. 열강은 상호 이윤의 배분과 협력은 늘어나고, 갈등과 대립은 감소한 것을 만족해했다(이는 한 때 유행한 종속이론이 빛을 잃는 계기가 되었다). 미중화해에 즈음하여 상해 국제문제연구소는 이점을 특히 주목하고 세세하게 분석했다. 중국이 해외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상호 투자! 그것으로 서방은 전쟁을 억제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일거양득의 황금알을 키우고 있지 않은가? 중국정부가 외국인투자유치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미중 양국이 화해한지 7년이 지나, 개혁개방을 선언하면서 부터였다. 자본주의를 방불케하는 과감한 지원과 인센티브가 뒤따랐다. 그리고 40여년이 흐른 2020년, 마침내 중국은 미국을 누르고 세계 제1위 투자유치국으로 올라섰다. 이 해는 코로나19 판데믹이 휩쓴 해였다. 이와 같이, 미중화해는 종래 불가피하다고 여기던 동서양 간 전쟁의 흐름을 투자의 흐름으로 전환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서, 미중화해 당시 한-미-중 상황을 일별해보자. 거기에는 우리가 얼마나 혹독하고 깜깜한 국내외 환경에 시달렸는지,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굴레가 무엇인지가 들어있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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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1-12-15
  • [3분 미중경제] 미중: 이 가을,‘할퀴기와 껴안기’, 그 뿌리를 찾아
    이 가을에 들어와, 미국 소비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0.7%). 미 언론(WSJ)은 ‘영웅적이고 용감하다!’고 소리친다. 얼마나 가슴조리는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JP모간도 ‘(유가 폭등이 있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보다 훨씬 좋다’고 북을 두드린다. 산더미 같은 부채와 5% 위로 무섭게 오르는 물가 속에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으로 들린다. 이처럼 일희일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만한 달러 풀기와 산더미 부채, 코로나19 방역 실패, 공급망 위축, 피할 수 없는 테이퍼링과 금리인상으로 사방이 어지럽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배제하고 판을 새로 짜겠다는 것이 바이든의 ‘때리기’ 전략이다. 오바마의 중국 포위 전략(Pivot to Asia)을 무색하게 한다. 제국의 위용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국은 어떤가? 심각한 빈부격차와 산더미 부채로 몸살을 앓기는 미국과 비슷하다. 중국정부는 정공법을 택했다. ‘홍색 규제’다. 단계적으로 규제 범위를 확대 중이다. IT 기업들의 공룡화, 게임 중독과 사교육 광풍, 연예계 비리, 그리고 금융계 불법... 어수선하게 사는 모습이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 다르지 않다. 그것을 잡아보겠다는 것, 지휘봉은 중국공산당이 쥐고 있다. 이것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새로운 체제 모델을 모색하는 신호탄이다. 새로운 체제모델의 큰 그림은 11월 6중전회(11.8-11.11)와 내년 3월 전인대에서 드러날 것이다. 1945년, 1981년에 이어 ‘역사결의’도 나온다(6중전회). 그간의 시장경제를 돌아보고 새로운 비전(체제모델)을 제시한다. 코로나19 방역을 토대로 경제 상황이 비교적 좋다. 지난해에 ‘나홀로 성장’(2.3%)을 보인데 이어 올해도 8% 전후로 세계 1위를 찍을 전망이다. 추격은 멈추지 않는다. 반면, 소리치는 바이든은 다소 힘겹다. 앵글로색슨의 단합을 외치며(미-영-호주, AUKUS), 핵확산 금지조약조차 무시했다. 호주에 핵잠수함을 파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와 EU 외무장관들이 일제히 들고 나섰다. 국내 지지율도 하락세다. 중간선거가 내년이다. 이럴 때는 ‘때리기’를 잠시 멈추는 것도 방법이다. 존 손턴 의장의 중국 방문 이후, 바이든은 처음으로 중국과 각종 고위급 대화 채널을 열었다(10월초). 중국 정부도 알고 있다. 약간의 ‘껴안기’ 전략은 새로운 ‘할퀴기’를 위한 준비라는 것을..... 점점 미국에 대한 기대를 줄여가고 있는 것이다. ‘할퀴기’는 지속되겠지만 ‘전쟁 분위기 고조’는 고비를 넘고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키던 백악관이 화가 난 중국에 대화 신호를 보내자, 대만 총통 차이잉원도 ‘현상 유지를 원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북한에 대해서도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를 되풀이하는 거냐는 비판을 다소 의식하는 수준이다. 남중국해와 대만, 그리고 한반도에 ‘미치광이 전략’이 또 한 차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양국의 경제 교류는 활발하다. 올해 중국의 미국 수출은 5천억 달러 가까운 신기록을 찍을 듯하다. 중국을 할퀴는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국 자산운용사들이 바라보는 중국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중 시각은 ‘갈지자’ 행보다. 정부는 ‘양자택일은 없다’는 입장인데, 사방에서 미중 갈등에 북을 친다. 중국시장을 멀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국책 연구소도(9월) 있다. 중국 소비시장은 별 볼일 없다고 소리치기도 한다. ‘금지된 장난’이다. 이처럼 미국이 ‘할퀴기’에 열을 올리면 우리사회는 영락없이 전쟁 트라우마가 진저리를 친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나온 과거와 현실 정치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스스로 해소해야 할 유산이다. 이렇게 변화에 대한 ‘인식’은 힘이 든다. 실제 미중 전쟁의 가능성은 어떤가? 미국 항공모함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다. 그 해답의 뿌리는 1972년 미중화해에 있다. 당시, 미국과 서방 투자자들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들떠 있었다. 이제부터 중국은 다시 ‘말 잘 듣는 하청공장’인 동시에 ‘거창한 상품 시장’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팔을 걷어 올리고 중국시장을 주시했다. 그러나 화해를 준비하는 중국은 심각했다. 미국과 손잡고 경제를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전쟁 위험을 심사숙고해야 했다. 미국은 전쟁으로 제국의 초호화 특권을 잡은 나라지만, 중국은 전쟁으로 몰락의 지옥 문턱을 다녀온 나라다. 같은 전쟁이 아니다. 대륙에서 물러난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실컷 한 셈이다. 어쨌든 화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래를 누가 아는가? 미국은 ‘힘센 사춘기 소년 같은 나라’다(마리오 꾸오모 전 뉴욕주 지사). ‘유비무환’이라던가! 당시, 중국은 ‘3차세계대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제국주의가 상품시장 쟁탈에 눈이 뻐얼건 한, 그들은 수시로 전쟁으로 결산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 레닌의 견해를 연장한 것이다. 모처럼의 화해가 ‘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돌파구는 없는가? 그들이 찾아낸 것은 전후 ‘해외투자 패턴의 변화’였다. 그동안 ‘반역’으로 취급되던 ‘열강 상호 간에 직접투자와 기술이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여기서 중국은 희망을 찾아냈다. 필자는 상해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이와 관련된 자료를 1980년대 초에 입수했으나 발표는 좌절되었다. 매우 아쉬웠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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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 미중경제
    2021-12-01
  • [3분 미중경제] 미중시대; 월스트리트는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 정부나 기업은 중국 리더들을 깊이 알지 못해요. 그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합니다. 베이징과의 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합니다.’(존 손턴) 이처럼 일찍이 한국의 중국 전략에 아쉬움을 토로한 존 손턴(John thornton)은 현재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중국통이다. 그는 지금 중국 정부와 월스트리트의 가교인 ‘미중 금융 라운드테이블’의 공동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골드먼삭스 2인자(COO), 브루킹스 연구소 이사장, 그리고 중국 칭화대학 교수(2003)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6주간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그리고 한정(韓正) 부총리와 벽에 부딪힌 미중관계를 협의했다. 중국정부는 그를 특별하게 맞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외국 고위층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초청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올해 기후특사로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존 케리(전 국무장관)도, 상하이와 톈진으로 갔었다. 손턴이 베이징에 체류하는 동안, 양국 간에 굵직한 일 두 가지가 성사되었다. 바이든과 시진핑의 통화, 그리고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의 석방이 그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극렬한 미중갈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현재, 미중관계는‘혼란’ 그 자체다. 바이든은 시진핑을‘폭력배(thug)’라고 능멸하면서,‘럭비공 트럼프’와 맞먹는 거친 입을 과시했다. 군사적 긴장 조성도 트럼프를 능가한다. 긴장 상태를 남중국해에서 대만해협, 그리고 한국 동해까지 넓히려 한다. 영국이 나섰다. 미국 전투기를 탑재한 영국 항공모함이 우리 동해에 와서 한국군과 공동 군사훈련을 수행한 것이다(지난 9월). 화웨이는 미국이 기술 견제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중국 대표 기업이다. 손턴은 이런 시기에 베이징 대화를 끌어낸 것이다. 홍콩 언론(SCMP)은 이번 손턴의 성과를 50년 전 미중화해의 막후 채널로 이름을 날린 헨리 키신저 같다고 높게 평했다. 그는 인권 문제가 불거진 신장(新疆) 지역도 1주일간 여행했다. 다시 손턴의 한국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한국이 중국과 긴밀해질수록 미국과 관계도 좋아집니다. 일본은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그 틈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붙들고 있는 상식의 굴레를 벗어나는 얘기다. 중국 접근 시각과 상황 인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찍이‘4대국 보장 중립국’을 주장하고,‘6.15 남북공동선언’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처럼 열강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는 없어요. 그러면서도 세계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처럼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현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추가해야 할 일입니다.’(졸저‘미중 패권전쟁은 없다’321쪽 참조) 우리가 유념할 것은, 바로 이런 에너지로 무장된 인물들이 월스트리트의 중국 투자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중 양국의 상호 투자는 3조 3천억 달러가 넘는데(2020.12 현재), 세계 금융 기관들은 앞으로 5년 동안, ‘외국인들이 중국 시장에 최대 1조 달러를 더 투자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와 반면에, 바이든은 취임 이래 지난 8개월 동안 전력을 다해 ‘중국 할퀴기’에 몰두해왔다. 그러나 아프간 철수도, 호주 핵잠수함 제공도, 그리고 백악관의 삼성전자 반도체 관련 내부자료 요구도, 어느 것 하나 순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 균열 조짐 등 국내 문제도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이처럼 백악관(정치 권력)과 월스트리트(자본 시장)의 엇갈리는 상황은 그대로 미중 양국의 희한한 ‘이중구조’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그 ‘이중구조’의 내면에서 이들 백악관과 월스트리트는 늘 치열하면서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존 손턴의 중국 방문도 백악관과 몇 차례 승강이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백악관이 미 제국의 사령탑이라면, 월스트리트의 위상은 곧 미국 자본주의의 위상이다. 권력과 시장! 그들의 힘겨루기를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이제 이런 ‘이중구조’의 첫 출발을 살펴보자. 거기에 오늘날 미중관계의 큰 윤곽이 들여다보인다.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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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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